무문관 21

마주침과 헤어짐의 기로

월암 화상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해중은 100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를 만들었지만, 두 바퀴를 들어내고 축을 떼어 버렸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인가?" ≪무문관 8칙》 해중이 수레를 해체했을 때, 그 고가의 수레는 어디로 갔을까? 수레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만일 어딘가로 갔다면, 단지 그것은 해체되기 전 고가의 수레를 탐내며 보았던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해체되는 순간,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이도 이런 통찰은 있는 그대로 사태를 보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고가의 수레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인연화합'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사건들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들이 ..

무문관 2020.04.07

손님에서 주인으로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라고 말했다. 《무문관 12칙》 대승불교에서 꿈꾸었던 화엄세계는 모든 존재들이 자기만의 가능성과 삶을 긍정하며 만개하는 세계이다. 향이 옅다고 나쁜 꽃이고, 색이 탁하다고 무가치한 꽃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들 각각은 모두 자기만의 자태와 향취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주인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타자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부정해 왔을까?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 행복을 포기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남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남이 아무리 선의지를 가지고 조언을 해도, 그 말에 따라..

무문관 2020.04.05

보시, 수행의 시작과 끝

조산 화상에게 어느 스님이 물었다. "저 청세는 고독하고 가난합니다. 스님께서는 제게 무언가를 베풀어 주십시오." 조산 화상은 말했다. "세사리!" 그러자 청세 스님은 "네"라고 대답했다. 이어 조산 화상은 말했다. "청원의 백 씨 집에서 만든 술을 세 잔이나 이미 마셨으면서도, 아직 입술도 적시지 않았다고 말할 셈인가!" 《무문관 10칙》 * 세사리 : 사리라는 말은 아사리의 줄인 말로 고승을 경칭하는 말임 부처가 되는 치열한 수행을 불교에서는 바라밀이라 부른다. 대승불교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을 이야기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철학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것과 타자와 관련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계율을 지키는 '지계', 온갖 모욕에도 원한을 품지 않으려는 '인욕', 악을 제거하려고 ..

무문관 2020.04.05

이르는 곳마다 편안한 여행

동산 스님이 설법하려고 할 때, 운문 스님이 물었다.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나 왔는가?" 동산은 "사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운문 스님이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묻자, 동산은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바로 운문 스님이 "언제 그곳을 떠났는가?"라고 묻자, 동산은"8월25일에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운문 스님은 말했다. "세 차례 후려쳐야겠지만 너를 용서하마." 동산은 다음 날 다시 운문 스님의 처소로 올라와 물었다. "어저께 스님께서는 세 차례의 몽둥이질을 용서하셨지만, 저는 제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운문 스님이 말했다. "이 밥통아! 강서로 그리고 호남으로 그런 식으로 돌아다녔던 것이냐!" 이 대목에서 동산은 크게 깨달았다. ≪무..

무문관 2016.06.18

자의식이라는 질병

대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마조 스님은 "마음에 이르면 부처다"라고 말했다. 《무문관 30칙》 무아! '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은 아마도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입장일 것이다. 모든 사물에게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순간, 우리는 사물에 대한 해묵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동시에 그만큼 우리의 마음도 고통과 불만족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 그러니까 가장 행복할 때의 모습을 진정한 자기의 모습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위대한 현자들이 인간을 허영덩어리라고 지적했던 이유이다. 허영이든 무엇이든 진정한 자기의 모습, 그러니까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고 믿고 그것에 집착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항상 고통과 ..

무문관 2016.06.18

있는 그대로를 보라!

송원 화상이 말했다. "힘이 센 사람은 무엇 때문에 자기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없는가?" 또 말했다. "말을 하는 것은 혀끝에 있지 않다." 《무문관 20칙》 원효가 무덤 속에서 마셨던 물을 먹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나에게 있지, 실제로 물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답고 추하다는 가치평가만이 우리 마음이 만들었지 결코 우리 마음이 해골이나 그 안에 담긴 물마저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이다. 생사와 무관하게 독립한다고 생각되는 자아, 즉 불변하는 영원한 자아를 불교에서는 '아(아트만)'라고 부른다. 불교는 이런 영원한 자아를 부정한다. 영원한 것, 불변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우리 마음에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하거나 불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영원한 것, 그리..

무문관 2016.06.18

카르페 디엠!

어느 스님이 "무엇이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요?"라고 묻자,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 《무문관 37칙》 중관학파는 세상의 모든 것은 분명 실재하지만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까 일정 정도 지속의 폭을 지니는 현실적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예를들면 화려하게 봄을 수놓는 벚꽃은 잠시지만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극단적인 본질주의와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자신들의 견해를 중도라고 이야기 한다. 중관학파의 생각에 따르면 벚꽃이 덧없이 진다는 이유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적 생각도 집착이고, 벚꽃이 지더라도 벚꽃은 불변하는 영혼처럼 다른 세계에 영원히 살고 있다는 본질주의적인 생각도 집착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어떻게..

무문관 2016.06.18